“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인생을 과소평가하지. 재밌는 건 당신 인생, 내 인생, 늙은 후사인이 인생 같은 우리 얘기가 결국 모두 같다는 거야. 사실 전 세계 어디를 가든 중요한 이야기는 단 하나야. 젊은, 상실, 구원에 대한 열망이지. 그래서 우리는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거야. 세부 내용만 다를 뿐이지.” 294쪽
물이 새는 어항에 남겨진 한 마리 물고기가 떠올랐다. 새로운 물을 끊임없이 부어도 깨진 부분으로 물은 사라진다. 결국 어느 순간 물고기는 생을 마감할 것이다.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다. 가느다란 숨을 이어가던 시간, 그 마지막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로힌턴 미스티리의 『가족 문제』를 읽는 내내 나는 아버지를 생각했다. 누군가는 이 소설이 인도의 실상을 대해, 사회적 모순에 대해 말하는 소설로 다가올지 모르지만 내게는 제목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인 <가족 문제>로 남았다.
배우자를 잃은 노년의 삶은 서글프다. 거기다 몸까지 아프면 절대적으로 자녀에게 의존해야만 한다. 몸이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더욱 그렇다. 소설 속 나리만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았다. 집 안에서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여자와 사랑에 빠진 탓에 힘겨운 젊음을 보내고 결국엔 사랑과는 상관없는 결혼을 했다. 사별한 남편 사이에 남매를 둔 여자와 살면서 딸 록산나를 낳았지만 행복한 결혼 생활은 아니었다. 아내가 죽고 친딸은 결혼했지만 의붓아들 잘과 딸 쿠니는나리만과 행복의 성이라는 이름의 아파트에서 함께 산다. 그러다 파킨슨병을 앓는 나리만이 다리 골절을 당해 자식들의 수발을 받아야 할 상황이 되자 의붓남매은 동생에게 맡긴다. 결혼할 때 집을 장만해줬다는 이유로 말이다.
짐이 된 기분을 애써 감추며 나리만은 록산나의 작은 아파트로옮긴다. 오로지 침대에 누워 대소변을잣기에게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나리만은과거연인 루시의 꿈을 꾼다.예자드는 그런 장인과 함께 살고 싶지 않지만 드러내지는 못한다. 힘들어도 3주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그러나 삶이란 정해진 시간에 도착하지 않는 버스처럼 말썽을 부린다. 가족이 늘었으니 생활비는 부족하고 설상가상으로 행복의 성엔 천정이 무너진다. 의붓아버지를 데려오지 않기 위해 쿠미가 꾸민 일이다. 그러나 그 마음 깊은 곳에는 불편함과 의붓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있다.
대학교수였던 시절, 좋은 가문의 아들이었던 시절은 과거다. 나리만은 그저 늙고 병든 노인일 뿐이다. 자녀들의 집을 오가며 살아야 하는 나리만. 그런 아버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딸 록산나, 아내를 위해 생활비를 늘리려고 도박에 손을 대는 예자드, 힘들어하는 엄마를 위해 돈을 받고 과제 검사를 눈 감아 주는 아들, 모두가 가족을 위해 선택한 일이다.
가족을 위한다는 일이 가족을 더욱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나리만으로 인해 가족들은 하나가 되기도 하고 와해되기도 한다.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을 소재로 했기에 많은 부분 공감이 갔다. 하지만 『적절한 균형』으로 만난 로힌턴 미스티리의 힘은 느껴지지 않았다. 위트와 유머가 넘쳤지만 그 안에 담긴 냉철한 비판과 사유는 찾기 어려웠다.
다만, 내게는 아버지를 기억하는 또 하나의 책이 될 것이다.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계실 때 우리는 모두 두렵고 무서웠다. 누군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 길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 뜻을 알고 있다.
적절한 균형 , 그토록 먼 여행 으로 인도의 정치와 종교,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과 콤플렉스를 꿰뚫어온 로힌턴 미스트리의 세 번째 장편소설. 로힌턴 미스트리는 이 소설에서 인도 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파르시 가족을 통해 죽음, 가족, 세월의 흐름, 필연적 상실, 신이라는 큰 주제들을 자신만의 독창적이고도 뛰어난 방식으로 풀어냈다.
로힌턴 미스트리는 19세기 거장들에 비견되는 사실주의적 기법을 견지하면서도 따뜻한 시각으로 인도인의 삶에 대한 연민을 드러내 왔다. 그가 그리는 인도인의 삶은 인간의 보편적인 삶의 모습이면서도 일상의 깊숙한 내면에서 성스러움을 발견하는 감동적인 드라마다. 이번 소설은 그가 줄곧 선보였던 극사실주의적이면서 온정적인 리얼리즘의 절정을 이룬다.
가족 문제 는 그의 장편 소설 3부작 중 우리 일상에 가장 가까운 이야기다. 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필연적으로 관계 맺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인 가족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가족의 문제는 단지 가족 안에서만 발생하고 머물지 않는다. 사회와 국가의 문제들과 복잡하게 뒤얽혀 수많은 부정과 문제들이 난무하는 것이다. 그 와중에도 작가는 보편적 인간애의 존재를 힘겹게 찾아 우리 앞에 내놓는다. 그것은 바로 일상에서 펼쳐지는 작은 승리들, 우리가 ‘기적’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인간애이다. 가족 문제 는 로힌턴 미스트리가 추구하는 ‘적절한 균형’으로의 능력을 가장 잘 보여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가족 문제 007
에필로그 5년 후 570
옮긴이의 말 일상의 작은 승리, 가슴 아픈 현실을 견딜 수 있는 가장 큰 힘_손석주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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