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소와 정조의 탄생 내 일찍이 임신하여 1750년 의소를 낳았는데. 불행히 1752년 봄에 잃으니, 삼전과 선희궁이 애통하시니라. 내 불효하여 참변을 만났나 괴롭더니, 그해 9월에 정조께서 나시니라. 1751년 10월 경모궁께서 꿈을 꾸셨는데, 용이 침실로 들어와 여의주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셨는지라, 깨셔서 기이한 징조라 하시며, 그날 밤에 즉시 흰 비단 한 폭에다 꿈에서 본 용을 그려 벽에다 붙이시니, 그때 경모궁 춘추가 십칠세라. 꿈속 일이니 우연으로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을, 아들을 얻을 기이한 징조라 하시며 기뻐하시기를 꼭 노성(老成)한 어른처럼 하시던 일이 이상하고, 용을 그린 화법이 비상하더니, 과연 정조의 탄생에 응한 기이한 꿈인가 싶더라. 내 먼저 출산에서는 아들을 일찍 잃어 어미 도리도 해보지 못했더니, 이번에는 의소의 죽음으로 온 나라가 슬퍼하다가 다시 경사가 나니, 삼전의 기쁨도 처음보다 더하시니, 우리 집 사람들의 마음이야 어떠하리오. 어머니는 해산이 다 되어 들어오시고, 아버지는 숙직하신 지 불과 육칠 일에 경사를 보시니라. 양친의 즐거움이 무궁하시니, 내 마음도 기쁨이 비할 데 없더라. 주상(정조)의 자질이 강보에서부터 비상히 영특하니, 내 스무 살이 못 된 나이로되 마음속으로 떳떳하고 기쁘니라. 이는 인정에 당연한 일이거니와, 그때 이 아들 낳은 것을 일생의 가장 큰 기쁨으로 여겼으니, 내 닥칠 험한 운명에 비추어 이미 앞을 내다보았던가 싶더라. 그때 홍역이 크게 일어나 화협옹주가 먼저 앓았더라. 내의원에서 경모궁과 원손(정조)에게 옮지 않게 거처를 옮기시라 청하니, 그때 아기씨가 아직 삼칠일도 되기 전이라 움직이기 어렵되, 옮기라는 명령을 어기지 못하니라, 경모궁은 양정합이라 하는 집으로 옮기시고, 원손은 낙선당이라 하는 집에 들이니, 삼칠일 안 아기로되 체구가 커서 거리가 먼데도 안아 가되 조금도 열려스럽지 않더라. 낙선당에 들어 보모는 정하지 못하고 늙은 궁인과 내 유모에게 맡기니라. 199쪽 나의 일생. 이렇게 읽으니 일기는 아니고 기록을 보며 적은 소감문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도 이렇게자신의 기억과 기록을 정리하여 기록한 것은 분명 귀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모궁은 십칠세이고 자신은 스무 살이 못 된 나이. 그리고 왕궁에 있으면서도 아이의 죽음을 막기 어려웠던 시절. 왕조의 아이가 나고 죽음이나라의 기쁨이고 슬픔이었던 시대. 그 시대를 천천히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을 펼쳐보고서알았습니다. 읽어야겠습니다. 시간 들여 찬찬히 읽어야겠습니다.
조선 시대 가장 산문 문학의 정수 교양 높은 명문가에서 태어나 어려서 궁궐에 들어가 조선 최고의 지존이 되었던 혜경궁이, 자신이 겪은 파란만장한 삶을, 때로는 담담히, 때로는 격정적으로 회고하고 비판하며 분석한 글이다. 뒤주에 갇혀 죽은 남편 사도세자를 가슴에 묻고 첩첩한 아픔을 절제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혜경궁 산문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치밀한 기억력을 가지고 당시 역사를 재구성해낸 혜경궁의 글은 공식 사료를 뛰어넘는 궁중 역사에 대한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이 책은 기획 기간만 5년일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만든 한국고전문학 전집 시리즈 중 하나로, 고전의 이본들을 철저히 교감해 연구자를 위한 텍스트로 만들었을뿐 아니라 현대 독자들을 위해 살아 있는 요즘의 언어로 최대한 쉽게 풀어쓴 책이다. 독자를 위한 대중성과 연구자를 위한 전문성을 모두 획득하기 위해 현대어역과 원본을 모두 담아 낸 시리즈 중, 이 책은 한중록을 현대어로 번역해 놓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