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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fsdfred 2024. 2. 4. 22:07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박형준그 젋은이는 맨방바닥에서 잠을 잤다창문으로 사과나무의 꼭대기만 보였다가을에 간신히 작은 열매가 맺혔다.그 젋은이에게 그렇게 사랑이 찾아왔다그녀가 지나가는 말로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그는 그때까지 맨방바닥에서 사랑을 나눴다지하 방의 창문으로 때 이른 낙과가 지나갔다하지만 그 젊은이는 여자를 기다렸다그녀의 옷에 묻은 찬 냄새를 기억하며그 젊은이는 가을밤에 맨방바닥에서 잠을 잤다서리가 입속에서 부서지는 날들이 지나갔다창틀에 낙과가 쌓인 어느 날물론 그 여자가 왔다 그 젊은이는 그때까지사두고 한 번도 깔지 않은 요를 깔았다지하 방을 가득 채우는 요의 끝을 만지며그 젊은이는 천진하게 여자에게 웃었다맨방바닥에 꽃무늬 요가 펴졌다 생생한 요의 그림자가여자는 그 젊은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사과나무의 꼭대기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家具의 힘」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한국 서정시의 전통을 가장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는 시인 으로, 이지와 감성의 결합, 언어와 율조의 긴장, 감각과 서정의 균형 등을 통한 시적 성취를 높이 평가 받고 있는 박형준 시인. 첫 시집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 하련다 를 펴낸 이후 3~5년 마다 꾸준히 시집을 펴내어 올해로 등단 20년을 맞이한 그가, 2005년에 출간한 전작 춤 을 펼쳐낸 후 6년이라는 긴 공백 끝에 펼펴낸 새 시집이다.

시인의 시들은 기억의 감광막에 묻어 나온 사물들의 내밀한 도상을 펼쳐 보이며 현재의 팍팍한 시간들을 달랜다. 다사다난한 감정의 일렁임조차 일상 사물들의 범상한 형상에 투과해 부드러운 물질로 정화시키는 마력을 그의 시는 지니고 있다. 이 부박하고 처량 맞기도 한 삶이 본질적으로 감추고 있는 결곡한 신비에 대해 그는 줄곧 노래해왔다. 그의 시를 읽다 보면, 흐릿해진 시간이 곱게 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렇게 펼쳐진 시간은 문자가 환기하는 마음속 영상 그대로 온유하고 단아하다.


시인의 말

제1부 아버지의 죽음에 바치는 노래
황혼
시집
석산꽃
단풍

박쥐
백 년 항아리
마차
가을 이불
홍시
사경(四更)
별식(別食)
천장(天葬)
서커스
가을밤 귀뚜라미 울음
우물
아침 달 뜨면
꼬리조팝나무
무덤 사이에서
나는 채소 먹으로 하늘나라 가지

제2부 책상에 강물을 올려놓고
서시(序詩)
휘파람
저녁의 눈
빙산
시체의 악기
사랑은 꽃병을 만드는 일이라네
눈의 정글
뼈 위의 도서관
달에 기어간 흔적이 있다
개밥바라기
미역 건지는 노파
밤 시장
어린 시절
가슴의 환한 고동 외에는
책상
독음(獨吟)
여름밤
몽고반점
다림질하는 여자
절도광
계단의 끝-여림을 추억함
시 창작 교실

공포를 낚다
당신의 팔
먹구렁이
거미 혈액
코끼리 사냥철
황제펭귄
수문통 2
여우비
기관차 묘지-수문통 3
수문통 4
초파일
벽지
돼지의 속눈썹
창문을 떠나며
마리나 츠베타예바를 읽는 저녁
밤의 스핑크스

제3부 남은 빛
빗소리
해가 들지 않는 곳에서 빛이 내릴 때
강물이 언어로 속삭인다
근원 가까이에서 울고 있는 새들
가는 비
봄 우레
투명한 울음
부뚜막
초승달
날개옷
시신에 밴 향내
피리
초록 여관
불꽃
저녁 빛
눈 내리는 새벽
시간 두루미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여름의 슬픔
공터
저녁 밤
입술
눈썹
봄 저녁의 어두운 질주에 관하여
고향에 빠지다
이슬의 힘
술꾼
진달래 길
봄비
웃음
커튼처럼 사람을
들판의 나무 한 그루
타인들의 광선 속에서
겨울 아침
봄의 숨결
사막의 아침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남은 빛-파울 첼란의 「꽃」에 부쳐
발걸음
대지에 기도를 올리시는가-최하림 선생님께
스케치북

해설|숨은 빛-단편영화 「푸르른 운석」(가제) 촬영기·강정